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설교

[08.03] 위의 것을 찾으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5. 08. 03.
  • 말씀본문 | 골로새서 3:1~11

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11)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찾고 추구하는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강조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다시) 태어난 (신분)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죽었는데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라고 역설합니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세례받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또 함께 살았다’라는 표시입니다. 즉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았다’라는 것으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세례는 ‘죄 속에서 살던 내가 이제 영원한 길, 생명의 길로 들어섰다’라는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1세기 당시 헬라 철학에서 말하던 이분법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은 놀라운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 시민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위의 것을 찾는 삶’이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죽여야 할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종합해 보면 한마디로 이기적인 삶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삶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집중된 삶이 ‘땅의 것’이고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고백하고 믿어서 천국에 속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즉시 옛사람과 그 행위가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비록 영생을 얻은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매일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저절로 그런 것들이 다 된다면 왜 이렇게 계속 명령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차별)을 (거부)하는 존재입니다.


  위의 것을 찾고 추구하는 삶, 새 사람을 입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구분이 필요 없게 됩니다. 이전에는 헬라인이냐 유대인이냐, 할례를 받은 사람이냐 안 받은 사람이냐, 야만인이냐 문명인이냐, 종이냐 자유인이냐를 따지고 적대시하며 차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그런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세기 당시 여러 군데에 있던 교회들, 특히 이방 지역의 교회들을 보면 평민층이 많았지만, 분명히 높은 사람들도 있었고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예가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에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모든 장벽을 다 허무시고 하나가 되도록 하셨는데, 여전히 우리 인간들은 담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담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