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징계에 대한 말씀으로 범죄한 형제를 출교하기까지의 매뉴얼로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속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형제의 (허물)을 보고 쉽게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이 늘 정확하지 않습니다. 항상 정확하지도 늘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즉 “사람의 판단은 객관적이지도 그리고 일관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판단에 대한 오류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속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과 그 과정이 매우 엉성하고 서투르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는 것에 신중하지 못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충고하는 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시비비를 가리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단 형제를 얻으려는 마음입니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마음 말입니다.
2. 형제의 참된 (믿음)을 위하여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출교와 제명을 목표로 한 목회매뉴얼로만 본문을 이해한다면 오늘 마태복음 18장의 말씀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어지는 앞뒤의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말은 “교회 공동체의 결정과 그 뜻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을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권면과 확증의 증인으로 그 자리에 나섰던 당사자라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던 너희가 먼저 이 문제를 위해 기도로 풀어야한다!” “지금 그 사람의 맺혀있는 그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간절히 위해서 기도하라!”
3.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작은 교회를 위로하려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그 문제의 해결에 대해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들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주님이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고 행동합니다. 심지어는 기도하면서도 그렇고 예배드리면서도 그렇습니다. 왜 교회가 갈등하고 분열합니까?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계심을 전혀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됩니다. 온 교회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누가 시험이 들었다면 틀림없이 예수님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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