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3] 과연 여기 계시거늘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중대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절대 고독과 무력감 가운데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1. 살아계신 ( 하나님 )을 ( 인격적 )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동안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무수히 들었고, 또 자기 스스로도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알기를 노력했지만, 오늘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찾아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아무리 말씀의 장막에 거하며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믿음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과 믿음의 아버지인 이삭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더라도, 육신의 욕망에 집착하는 삶의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혀 경험할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은 ( 지금 ) ( 여기에 ) 동행하고 계십니다.
야곱은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야곱이 첫 번째 한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루스, 즉 야곱이 벧엘이라고 부른 그곳에만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집을 떠나기 전, 브엘세바에도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집을 떠나 루스에 오는 여정에도 계셨습니다. 사실 야곱이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 그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었습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단지 그동안 야곱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계신 바로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 ‘벧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함을 ( 구체적 )으로 ( 증거 )하여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일 우선적인 변화는 예배 중심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같이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자 무일푼의 야곱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십일조의 서원을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십일조는 헌신이 아닌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떼어 놓는 것을 어떻게 헌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한 헌신은 십일조를 넘어선 이후에나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몫으로 허락하여 주신 것을 포기하고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이 진정한 헌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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