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야곱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은 벧엘의 사건과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축복받는 사건입니다.
1. 하나님이 야곱을 ( 축복 )한 자리는 ( 고독한 ) 자리였습니다.
야곱을 축복해주신 그곳 그 자리는 야곱이 홀로 있는 절대 고독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홀로 있는 시간, 절대 고독을 느끼는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간섭하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진정한 내 모습을 잘 보지 못합니다. 세상이 내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고 있을 때에 우리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아갑니다. 폼을 잡고 허세를 부립니다. 자신을 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대부분의 내 모습은 참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위장된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정직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거짓된 나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시기 전에 야곱을 홀로 남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2. 축복의 그 자리는 ( 환도뼈 )가 부러지는 ( 고통 )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더욱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낮추고 또 낮추도록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더욱 낮아졌습니다. 땅바닥에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자신을 낮춤.” 바로 그것이 꼬인 상황 속에서 야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해답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했습니다. 또한 같은 자세로 형 에서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이나 관계성 속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상대방 앞에서 낮추는데 있습니다.
3. 신앙의 ( 분위기 )가 ( 브니엘 )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이날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예전에 벧엘에서는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을 뿐인데, 얍복 나루터에서는 하나님의 음성도, 그리고 하나님의 터치도, 또 하나님의 얼굴까지도 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나서 야곱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냥 살아있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제는 원이 없는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도, 성공 인생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휴지 조각같이 한낱 헛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얍복 나루터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기인생을 철저히 비우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얍복 나루터는 비우기만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으로 채움받는 브니엘의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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