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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7.09]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07.09
  • 말씀본문 | 사도행전 11:19∼26, 26:28

  가끔 전도와 선교에 열중하는 사람들에서 매우 오만하고 무례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바른 전도와 선교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1. 선교는 기독교 신앙의 ( 옵션 )이 아니라 ( 본질 )에 속합니다.

    이러한 선교의 본이 되고 모델이 되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는 바로 예루살렘교회가 아닌 안디옥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특히 안디옥교회에서부터 예수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르게 된 배경에는 원수요 핍박자였던 바울을 지도자로 세우는 안디옥교회의 결정과 실행을 보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을 향하여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교인들을 보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것은, 비아냥의 뉘앙스보다는 놀라움의 표현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만 가지고는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전도는 물론이거니와 선교는 우리의 말 몇 마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 거의 ) 그리스도인에 ( 속지 )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그립바 왕에게 설교를 하자  "바울의 말을 듣고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다”는 것입니다(행16:28 .KJV). 여기서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아그립바처럼 온전한 크리스찬이 아닌 거의 크리스찬에 가까운 그런 그리스도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눈에 보기에 흠이 없어 보이고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닮아가지 못하는 어떤 신앙도 ’거의‘에 머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정직함, 성실성, 경건함, 진실성, 선함, 하나님의 뜻을 추구함 등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자신하거나 확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지옥의 길은 선한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 ”이렇듯 ‘거의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보통 생각보다 아주 높은 단계의 신앙을 말합니다.

 

3. ( 온전한 ) 그리스도인으로 ( 회복 )되어야 합니다.

   정직함과 성실함, 외적인 경건, 이 모든 것을 갖추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한 ‘거의’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전함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남들보다 뛰어나게 노력하고 그래서 이룬 것이 있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다만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매일 매순간의 십자가로부터 온전함의 능력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함은 매일 매일 뜻을 묻지 않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상태는 세상에 대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입니다. 내가 진실하게, 내가 거룩하게, 내가 솔직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상태가 되면 우리 삶의 모든 교만이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