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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7.16]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07.16
  • 말씀본문 | 창세기 25:29∼34

우리는 무엇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에서입니다.

 

1. 당장 눈에 ( 보이지 ) 않는 천부적인 ( 장자의 명분 )이 중요합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고 요구하자 에서는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하며 팔았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당장의 현실에서 눈에 보이게 드러나 보이거나 실제적인 유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장자의 명분은 자기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타자에 의해서 출생과 관계된 것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하늘로부터 천부적(天賦的)으로 부여되는 것이기에 어쩌면 무관심하고 무감각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려움과 고통과 근심과 염려 때문에 여러분 안에 있는 너무도 귀하고 귀한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적인 기준으로 하나님의 복을 헤아리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경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놓칩니다.


2. 성경적 장자권은 ( 출생 순위 )가 아니라 하나님의 ( 약속 )입니다.

장자권을 판다고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서 순서를 바꾸어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정작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장자권과 장자의 명분은 출생순서를 따르고 있지를 않습니다. 아담에게는 가인이라는 장자가 있었지만 결국 장자의 명분은 셋에게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출생순서로 본다면 이스마엘이 장자이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이삭에게로 장자의 명분이 흘러갑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장자권은 실제 태어난 출생 순위를 따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는, ‘약속’에 비중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쪽에 비중이 걸린 것으로 “하나님을 소홀히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3. 진정한 장자권은 ( 온전한 ) ( 그리스도인 ) 됨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롬9:13). 그런 야곱을 ‘조용한 사람’이라고 한 히브리어 ‘이쉬 탐’(איש תם)은 ‘완전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조용했기에 장막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흠이 없던 자였기에 장막에 거주했던 것입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온전한 사람,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첫 열매’, ‘장자’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습니다(약1:18). 우리도 말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갑시다. 아버지의 집에서 말씀과 계명을 배웁시다. 그래서 야곱과 같은 “이쉬 탐” 온전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