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설교

[06.04]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06.04
  • 말씀본문 | 요한복음 14:16~17, 24~27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면서 과연 성령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요한복음 14장을 중심으로 생각해봅니다.

1. 성령님은 또 다른 ( 보혜사)입니다.

保惠師 보호할 보, 은혜 혜, 스승 사은혜로 보호하고 가르치는 스승으로 제자들에게 원래 보혜사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제자들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대신하여 이 제자들과 함께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셨고, 바로 그 부탁의 내용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처럼 제자들을 은혜로 보호하시고 가르치시는 스승이신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세상 사람들은 보지도 알지도 받지도 못하지만, 그러나 제자들과는 함께 하시며 제자들 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2. 성령님을 ( 존중)할  때에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존중받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보통 성령님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만 진정한 성령님의 역사는 존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님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한다면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27절 말씀을 묵상하며 특히 더욱 다가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중한다고 하면서 친밀함이 없다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섭섭함’ ‘두려움같은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님을 존중하고, 성령님을 안다는 것이 꼭 어떤 공식에 대입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집중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 책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을 존중한다는 것은 책망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책망받는데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망 속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책망받을 때, 오히려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책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친밀하지 않다면 책망에 상처를 받게 되거나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중한다는 것은 책망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책망받는 것이 정말 인생에서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참된 평안은 이 무서운 책망을 받고, 존중하기 시작할 때에라야 찾아옵니다. 잘못된 삶에 대한 통제 없이 평안함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