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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16] 들어가 보고 믿더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 04.16.
  • 말씀본문 | 요한복음 20:1~9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이 여러분에게 능력으로 경험되시기를 바랍니다.

 

1. ( 용기)를 내어 믿음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안식일 후 첫날 그러니까 오늘로 말하면 일요일인 주일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가보니 돌문이 굴려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 속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왔습니다. 요한은 먼저 달려왔는데 무덤 속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리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나중에 온 베드로가 들어간 다음에야 요한도 무덤 속에 들어갑니다. 목회자로서 참 안타까운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임종할 때 보면 대개는 다 감사함으로 또 천국 가는 확신을 가지고 임종하지만 아주 극소수이기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분의 마음속에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겁니다. 아니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보다 깊은 (성찰)(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늦게 도착한 베드로가 먼저 무덤 속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요한도 따라 들어갑니다. 그런데 뒤늦게 따라 들어간 요한은 무덤 안을 보고나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믿기 믿었는데 도대체 뭘 믿었냐?”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말하는 빈 무덤이 라는 그 사실을 믿었다는 말인가요? 그러나 9절 말씀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요한은 부활을 믿은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무덤 안에 남겨진 단서들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그가 들어가 보고 믿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요한보다 먼저 현장을 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는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요한만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만큼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만큼 깊이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 부활)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심각한 (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으며 또한 증거하기를 원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복음이 살아나고, 만약 부활이 없으면 그 복음은 주저 앉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증인들이 증거한 내용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희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십니다. 여러분, 부활이 내 자신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십니까?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관을 고집하며 그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옹고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