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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3.19] 다만 이뿐 아니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03.19
  • 말씀본문 | 로마서 5:1∼11

오늘 본문의 앞 부분은 자칫 무례한 그리스도의 자화상으로 호도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 믿음은 ( 목적 )이 아니라 ( 출발점 )입니다.
믿음 혹은 “믿는다”는 말은 불완전한 명사이거나 동사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그 믿는 대상과 믿는 바 그 내용이 반드시 필요한 단어이가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분명한 대상과 내용을 가진 믿음이라는 관념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최종 목적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관념을 소유한 것만으로는, 하나님께로 가는 입구의 문지방 위에 올라선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는 4장까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속적으로 설명한 후에, 5장에서는 믿음을 ‘최종 목적지’로 묘사하지 않고 ‘출발점’으로 묘사하면서 “거기에서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에서 바울은 믿음에서 출발해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목적지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2. ( 영화 )의 자리로 나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 성화 )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자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으로 구원받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단숨에 이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환난, 인내, 연단, 소망을 품는 믿음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이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겪는 곤고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 육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된 소모품이라는 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노라 하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사람은, 이 육신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을 가지고 어떻게든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 사용해야 합니다.  


3. ( 성령님 )과 하나님의 ( 사랑 )이 이끌어 주십니다.
믿음의 출발 그리고 환난, 인내, 연단!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오늘 따라 정말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죠? 하지만 연단 다음에 뭐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통하여 결국 소망을 갖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망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삶의 자리에서 연약한 모습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혹은 원수된 자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을 버리거나 포기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우쳐 주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비록 우리가 또 십자가의 자리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시 그 십자가 증인의 자리, 십자가 순교자의 영광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근거요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