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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10.30]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6. 10. 30.
  • 말씀본문 | 사무엘상 15:24~30

  사람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낱낱이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바른 신앙은 (회개)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회개가 기독교 신앙의 전부일수는 없습니다. 회개 말고도 배우고, 나누고, 실천해야 할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분명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시작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삼상 15장에는 사울이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다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고, 순종치 않아 버림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사무엘의 질책을 들은 사울은 그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그런데 회개를 하기는 했는데 용서까지도 자기가 하려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라기보다는 성의 없고 형식적으로 회개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자기의 체면을 고려한 회개였습니다.

 

2. 사람 앞에서 (형식)과 (체면)으로 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어쩌면 사울 왕의 속마음은 이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참,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되게 시끄럽게 구는구만! 내가 사람을 죽였어, 간통을 했어? 그저 단지 전리품 몇 개를 그것도 나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고 귀한 것이어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그랬었던 것 뿐 이었는데, 되게 빡빡하고 요란하게 구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회개한다고 해야겠구만!” 그래서 사울왕의 입에서 그렇게 회개도 빨리 나왔고, 용서도 빨리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회개가 우리의 몫이라면,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회개했으니 하나님 어서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의례적으로 성의 없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며, 무성의하고 진솔하지 못한 회개는 받지 않으십니다.

 

3. 참된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고백하며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종교개혁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위대한 일을 감당했던 마틴 루터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거창한 사회의 구조적인 비리개혁이나 종교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개혁과 회개를 먼저 시작했던 사람이었고 진정한 종교개혁은 개개인 스스로의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에서부터라고 강하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비텐베르그 교회에 95개조항의 반박문 게시한 날로 부터가 아니라 그가 회개한 때로 부터인 것입니다. 이 땅의 다른 모든 신앙의 개혁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회개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개혁보다도 먼저 진정한 회개가 절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