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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10.02]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 속마음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6. 10. 02.
  • 말씀본문 | 사무엘하 7:1~9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아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속마음’이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다윗이 하루는 왕궁을 거닐다가, 왕궁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화려한 왕궁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뜻을 세웁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이 말 안에 담겨있는 그의 속마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의 이 말에 담긴 그의 마음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에 대한 다윗의 계획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처럼 매몰차게 다윗의 마음을 거절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진짜 (속마음)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 그대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같이 성막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라면, 그것을 계획하시고 설계하신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이 성막을 두고 초라하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더구나 성막이 처음 지어진 때로부터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성막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줄곧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장소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아무런 문제없이 충분히 제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막을 두고 지금 다윗은 “그것이 초라하니 고쳐야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만나는 다윗의 속마음은 바로 교만입니다.

 

  3. 마음의 (잡초)인 (교만)을 반드시 해결하여야 합니다.

 

  교만은 마치 잡초와 같습니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심히 보면, 그것이 교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뽑아도 뽑아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또 남아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결국 뽑기를 포기하면 마침내 온 밭을 다 뒤덮어서, 정작 잘 자라라고 심어놓은 것들을 다 죽게 만듭니다. 교만은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교만의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을 받은 다윗의 마음도 이처럼 잡초처럼 자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교만의 문제 때문에 신음해야 했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