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8] 택한 나의 그릇이라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0∼19a)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잔혹한 픽밥자였던 사울을 가리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택함은 받은 (질그릇)으로서의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인식의 변화는 그의 이름이 바뀜처럼 매우 역설적입니다. 주님의 택함 받은 그릇이니까 그 자신이 얼마나 값비싼 그릇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빛이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보배로, 자신을 질그릇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란 잿물이나 유약을 쓰지 아니하고 진흙만으로 구워진 그릇으로, 투박하고 거친 모양은 그릇 중에 최하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깨닫고 보니 주님을 대적하던 바울 자신은 주님 앞에서 질그릇 정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질그릇을 주님께서 당신의 그릇으로 택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후 바울의 인생이 가치로와 진 것은, 질그릇인 그 자신으로 인함이 아니라, 그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2. (복음)을 품고 있지 못하다면 (죽음)의 그릇일 뿐입니다.
파묘(破墓)나 이장(移葬) 시에 이미 사용했던 수의(壽衣)나 관(棺)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리고, 비석은 아예 깨어버리거나 땅속 깊이 파묻어 버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비싸게 마련했던 것을 재활용하지 않고 아깝게 다 폐기처분해버립니까? 그 까닭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그 모든 이유는 죽음을 담았던 그릇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담았던 그릇이란 산 사람에겐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영원한 진리와 생명을 자기 속에 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이란 실은 무엇이겠습니까? 고작 죽음을 담고 있는 죽음의 그릇에 불과할 따름인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입고 있어도, 아무리 값진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는 그 모든 것 속에 둘러싸여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선택)의 결과는 인간의 (응답)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핍박자였던 사울(바울)을 '택하신 그릇'인 '사도'로 부르시고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 의해 비로소 복음은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갈 수가 있었고, 실제로 신약 성경에 나타난 거의 모든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졌으며, 신약 성경의 무려 삼분의 일이 사도 바울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귀중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도구로 선택받는 것은 주님의 일방적인 은총이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전적으로 인간의 응답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주님의 그릇으로 선택된 것은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이지만, 그러나 그 마지막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우리가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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