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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4. 5]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 말씀본문 | 고린도전서 15:1∼11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어떠한 의미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에서 좀 더 무게를 가지게 될 때 우리의 믿음 생활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1. ( 죽음 )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부활이 ( 기쁨  )의 소식이 됩니다.

부활을 말하기 전에 이 부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기 위해선 먼저 죽음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것 같지만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나누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주제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는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죽음을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히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까?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있을 때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이 엄청난 기쁨이요, 소망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애통함을 진지하게 가져야만 합니다.

 

2. 부활의 사건이 ( 나 )의 사건이 되어야 참된 부활의 ( 증인 )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실제의 사건이고 이에 대한 수많은 목격자와 증인들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자기 자신도 그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언급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음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하는 자기 증거에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자격 없는 사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님이 찾아와 주시어서 부활의 증인이 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약화되거나 없어지지 않고 진리의 등불로서 변함없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복음의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 주셨고, 지금도 여전히 찾아가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3. 오늘 우리의 부활 신앙은 ( 그리스도 )와 함께 ( 다시 )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 ‘다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부활이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생명연장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없이 영원히 사는 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부활은 의미는 단순히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조건 다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끝없이 사는 것이 부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림을 받았느냐?”가 부활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부활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옛 삶을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부활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