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오늘 본문은 드로아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유두고 입장에서, 바울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살펴봅니다.
1. 불리한 ( 환경 )을 이기고 ( 말씀 )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은 종이나 노예에게 붙여지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두고는 틀림없이 노예나 종일 가능성이 크며 그렇다면 유두고는 주인에게 매인 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이나 노예에게 있어서 외출을 할 때는, 꼭 주인에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두고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을려면 주인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유두고는 내일도 할 일이 많은 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졸립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바울의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유두고 보다 못한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적어도 노예나 종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 죽음 )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 생명 )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유두고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일예배에서 선포한 말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떡을 때며 성찬도 나누었습니다. 유두고는 기절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죽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바로 안았다”는 것은, 그를 살리겠다는 마음의 기도가 그대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그에게 있다!”는 말로 부활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맥락을 보면 유두고의 죽음은 그 사이에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다루고 있고, 생명의 양식인 계속해서 다시 떡을 떼고, 생명의 말씀이 이어질 때, 죽음조차 극복되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3. 하나님의 ( 위로 )를 함께 ( 나누어야 ) 합니다.
오늘 말씀의 표현 중, “위로 받았다”는 표현에 집중해 봅니다. 왜 기뻐했다고 말하지 않고 위로 받았다고 했을까요?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누가 제일로 위로를 받아야 합니까? 사실 유두고만큼 위로를 받았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두고가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많이 충분히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유두고의 사건을 그 누구의 어떤 사람의 일로 느끼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의 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유두고라고 하는 종의 모습은 지치고 고달픈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1. 불리한 ( 환경 )을 이기고 ( 말씀 )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은 종이나 노예에게 붙여지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두고는 틀림없이 노예나 종일 가능성이 크며 그렇다면 유두고는 주인에게 매인 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이나 노예에게 있어서 외출을 할 때는, 꼭 주인에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두고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을려면 주인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유두고는 내일도 할 일이 많은 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졸립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바울의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유두고 보다 못한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적어도 노예나 종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 죽음 )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 생명 )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유두고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일예배에서 선포한 말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떡을 때며 성찬도 나누었습니다. 유두고는 기절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죽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바로 안았다”는 것은, 그를 살리겠다는 마음의 기도가 그대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그에게 있다!”는 말로 부활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맥락을 보면 유두고의 죽음은 그 사이에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다루고 있고, 생명의 양식인 계속해서 다시 떡을 떼고, 생명의 말씀이 이어질 때, 죽음조차 극복되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3. 하나님의 ( 위로 )를 함께 ( 나누어야 ) 합니다.
오늘 말씀의 표현 중, “위로 받았다”는 표현에 집중해 봅니다. 왜 기뻐했다고 말하지 않고 위로 받았다고 했을까요?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누가 제일로 위로를 받아야 합니까? 사실 유두고만큼 위로를 받았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두고가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많이 충분히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유두고의 사건을 그 누구의 어떤 사람의 일로 느끼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의 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유두고라고 하는 종의 모습은 지치고 고달픈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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