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올무에서 은혜의 사슬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내 마음과 생각과 영혼이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를 때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내면의 ( 이중성 )과 자기 ( 모순성 )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는 순간 그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했지만, 실제의 삶과 인격의 변화는 그렇게 단번에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의 피장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문 것은 자기 속 내면의 이중성과 자기 모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생각의 올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먼저 내면의 이중성과 자기 모순성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중성과 자기모순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율배반, 이중성, 자기모순을 극복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되어져야 할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통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믿음 안에 자신을 ( 시험 )하는 사람을 ( 은혜 )로 이끌어 주십니다.
베드로 스스로 자기모순을 극복하고 자기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능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여러 날을 묵었다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검증해 보려고 몸부림 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믿음을 위해 고민하고 번민하는 사람을 은혜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의 모든 배후에서 치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에게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특사가 욥바에 당도하기 전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도록 미리 역사하셨습니다. 낮 12시에 베드로로 하여금 느닷없이 기도하게 하신 분도, 기도하기 위해 올라간 지붕 위에서 환상을 보게 하신 분도, 모두 하나님이셨습니다.
3. 은혜의 ( 사슬 )이신 ( 성령 )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는 똑 같은 환상 즉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동일한 음성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곳에서 같은 환상, 같은 음성을 세 번씩이나 보고 들었음에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마저 타파해야한다”는 그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인간에 대한 편견의 타파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편견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하시는 성령님의 이 말씀 한 마디에, 그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 대해 지니고 있던 모든 편견이 타파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의 조명 아래에서 베드로는 방금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1. 내면의 ( 이중성 )과 자기 ( 모순성 )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는 순간 그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했지만, 실제의 삶과 인격의 변화는 그렇게 단번에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의 피장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문 것은 자기 속 내면의 이중성과 자기 모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생각의 올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먼저 내면의 이중성과 자기 모순성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중성과 자기모순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율배반, 이중성, 자기모순을 극복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되어져야 할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통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믿음 안에 자신을 ( 시험 )하는 사람을 ( 은혜 )로 이끌어 주십니다.
베드로 스스로 자기모순을 극복하고 자기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능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여러 날을 묵었다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검증해 보려고 몸부림 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믿음을 위해 고민하고 번민하는 사람을 은혜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의 모든 배후에서 치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에게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특사가 욥바에 당도하기 전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도록 미리 역사하셨습니다. 낮 12시에 베드로로 하여금 느닷없이 기도하게 하신 분도, 기도하기 위해 올라간 지붕 위에서 환상을 보게 하신 분도, 모두 하나님이셨습니다.
3. 은혜의 ( 사슬 )이신 ( 성령 )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는 똑 같은 환상 즉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동일한 음성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곳에서 같은 환상, 같은 음성을 세 번씩이나 보고 들었음에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마저 타파해야한다”는 그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인간에 대한 편견의 타파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편견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하시는 성령님의 이 말씀 한 마디에, 그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 대해 지니고 있던 모든 편견이 타파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의 조명 아래에서 베드로는 방금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링크
- 이전글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14.09.04
- 다음글직가(直街)에서의 선택 14.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