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오늘 본문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 완악한 ) 마음이 ( 제거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왜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그쳤다”고 하는 것은 그 “완악한 마음이 제거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명과 문화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아졌어도 지금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완악해져 있는지 모릅니다. 완악한 마음, 바로 그것이 전쟁을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완악한 마음이란 탐용과 이기심으로 굳어져 돌같이 딱딱한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는 ‘강퍅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한 마음은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도 마음이 강퍅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완악한 마음이 이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주님께 반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 두려움 )을 ( 물리 쳐야 )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거하는 땅에 아낙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낙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전쟁과 관계된 이야기에서 유독 ‘아낙 족속’을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아낙 사람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고 한 점입니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자라서 나중에는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아낙 자손들처럼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국가이든, 이념이든, 종교적인 우상이든, 물질적인 어려움이든, 특정 민족이나 사람이든지간에 그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3. 나의 ( 몫 )을 ( 나누는 )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매우 중요한 마지막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땅을 전쟁을 통해 취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으로 나누어주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이유는 나만 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복을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땅 분배는 얼핏 보면 이미 민수기에서 수차례 약속된 분깃을 따라 나누어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충만의 사건 이후에 그 나눔의 성격이 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의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조금 우리가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나의 몫을 떼어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땅에서 전쟁이 그칩니다.
1. ( 완악한 ) 마음이 ( 제거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왜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그쳤다”고 하는 것은 그 “완악한 마음이 제거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명과 문화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아졌어도 지금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완악해져 있는지 모릅니다. 완악한 마음, 바로 그것이 전쟁을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완악한 마음이란 탐용과 이기심으로 굳어져 돌같이 딱딱한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는 ‘강퍅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한 마음은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도 마음이 강퍅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완악한 마음이 이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주님께 반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 두려움 )을 ( 물리 쳐야 )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거하는 땅에 아낙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낙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전쟁과 관계된 이야기에서 유독 ‘아낙 족속’을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아낙 사람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고 한 점입니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자라서 나중에는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아낙 자손들처럼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국가이든, 이념이든, 종교적인 우상이든, 물질적인 어려움이든, 특정 민족이나 사람이든지간에 그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3. 나의 ( 몫 )을 ( 나누는 )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매우 중요한 마지막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땅을 전쟁을 통해 취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으로 나누어주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이유는 나만 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복을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땅 분배는 얼핏 보면 이미 민수기에서 수차례 약속된 분깃을 따라 나누어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충만의 사건 이후에 그 나눔의 성격이 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의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조금 우리가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나의 몫을 떼어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땅에서 전쟁이 그칩니다.
관련링크
- 이전글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14.06.29
- 다음글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1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