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는 고백이 나오기까지 어떤 믿음의 상호작용의 과정이 있었는지를 살펴봅니다.
1. 참된 회개는 ( 성숙한 ) 존재로 지어져 가는 ( 과정 )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아 세워진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가서 생명의 역사의 일으키고 돌아온 베드로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그의 노고를 치하함이 마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기독교인 중 가이사랴에서 막 도착한 베드로를 집요하게 힐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교인들의 부당한 힐난에 똑같은 힐난으로 대응치 않았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절교를 선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놀랍게도 자신을 힐난하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인내심을 갖고 기꺼이 그 일을 해내었습니다. 그는 어제보다 오늘 더 지어져 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날로 지어져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2. 참된 회개는 주님의 ( 말씀 )을 깨닫고 바르게 ( 반응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감히 이방인에게 세례를 주는, 당시 유대인의 사고로는 가히 혁명이랄 수 있는 일을 고넬료 일행에게 과감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그 말씀의 참 의미가 불현듯 깨달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던들, 베드로가 고넬료 일행을 구해내는 주님의 도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바르게 반응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진리의 깊은 의미를 캐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과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주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담겨 있지 않았던들, 그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다른 생각에 사로 잡혔을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데엔 조급해선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 담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3. 참된 회개는 새로운 ( 생명 )을 누리는 ( 존재 )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선물’로 표현한 성령강림을,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 구체적으로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이처럼 주님의 선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그 선물은 이 세상의 모든 선물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선물도, 그 선물을 받는 이에게 존재의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은 ‘생명 얻는 회개’, 곧 새로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존재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참 생명을 알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존재적 변화 즉 생명을 향한 회개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모두 이 선물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자답게,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마다치 마십시다.
1. 참된 회개는 ( 성숙한 ) 존재로 지어져 가는 ( 과정 )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아 세워진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가서 생명의 역사의 일으키고 돌아온 베드로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그의 노고를 치하함이 마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기독교인 중 가이사랴에서 막 도착한 베드로를 집요하게 힐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교인들의 부당한 힐난에 똑같은 힐난으로 대응치 않았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절교를 선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놀랍게도 자신을 힐난하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인내심을 갖고 기꺼이 그 일을 해내었습니다. 그는 어제보다 오늘 더 지어져 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날로 지어져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2. 참된 회개는 주님의 ( 말씀 )을 깨닫고 바르게 ( 반응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감히 이방인에게 세례를 주는, 당시 유대인의 사고로는 가히 혁명이랄 수 있는 일을 고넬료 일행에게 과감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그 말씀의 참 의미가 불현듯 깨달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던들, 베드로가 고넬료 일행을 구해내는 주님의 도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바르게 반응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진리의 깊은 의미를 캐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과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주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담겨 있지 않았던들, 그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다른 생각에 사로 잡혔을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데엔 조급해선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 담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3. 참된 회개는 새로운 ( 생명 )을 누리는 ( 존재 )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선물’로 표현한 성령강림을,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 구체적으로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이처럼 주님의 선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그 선물은 이 세상의 모든 선물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선물도, 그 선물을 받는 이에게 존재의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은 ‘생명 얻는 회개’, 곧 새로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존재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참 생명을 알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존재적 변화 즉 생명을 향한 회개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모두 이 선물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자답게,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마다치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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