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바울은 홀로 찾아간 고린도에서 로마에서 추방 된 아굴라 부부를 만나 그들과 함께 천막을 제조하면서 함께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 알지 ) 못하여도 ( 은혜 )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10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식민지 고린도를 대규모로 재건하면서, 또 100년 동안 폐지되어있던 '이스트미아' 경기대회를 부활시킴으로. 숙박시설이 턱 없이 부족하던 당시, 천막 제조업자들에게는 대규모 경기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과 외래 관람객들은 주요한 고객들이였습니다. 그런 고린도에서, 천막제조기술자인 바울이 천막제조업자인 아굴라 부부를 만남으로써, 홀 몸으로 찾아간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와 바울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마치 거미줄처럼 치밀한 주님의 섭리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 사람 )과의 ( 만남 )을 통하여서 인도하십니다.
만약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란 아테네에서처럼 실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아굴라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이스트미아 경기대회 특수를 겨냥해서 고린도로 이주해 갔다할지라도 그 곳에서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 부부는 천막제조업자로 살다가 삶이 끝나버리고 한 줌의 흙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에 있는 회당의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집안 사람들 그리고 회당 옆에 사는 디도 유스도 다 예비해 놓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수많은 영혼들이 예비되어 있음을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10절)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예민하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의 ( 말씀 )에 붙잡힌 ( 영적인 ) 만남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온 헌금이나 어떤 물질적인 후원 때문이 아니라, 실라와 데모데 그들 자신이 바울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간적으로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의지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주심을 서로 나누며 교제하는 “영적인 동역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는 전도팀을 구성하는 멤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동행하는 여행의 동행자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영적 동역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영적인 힘과 격려를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처럼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 알지 ) 못하여도 ( 은혜 )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10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식민지 고린도를 대규모로 재건하면서, 또 100년 동안 폐지되어있던 '이스트미아' 경기대회를 부활시킴으로. 숙박시설이 턱 없이 부족하던 당시, 천막 제조업자들에게는 대규모 경기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과 외래 관람객들은 주요한 고객들이였습니다. 그런 고린도에서, 천막제조기술자인 바울이 천막제조업자인 아굴라 부부를 만남으로써, 홀 몸으로 찾아간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와 바울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마치 거미줄처럼 치밀한 주님의 섭리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 사람 )과의 ( 만남 )을 통하여서 인도하십니다.
만약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란 아테네에서처럼 실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아굴라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이스트미아 경기대회 특수를 겨냥해서 고린도로 이주해 갔다할지라도 그 곳에서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 부부는 천막제조업자로 살다가 삶이 끝나버리고 한 줌의 흙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에 있는 회당의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집안 사람들 그리고 회당 옆에 사는 디도 유스도 다 예비해 놓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수많은 영혼들이 예비되어 있음을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10절)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예민하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의 ( 말씀 )에 붙잡힌 ( 영적인 ) 만남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온 헌금이나 어떤 물질적인 후원 때문이 아니라, 실라와 데모데 그들 자신이 바울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간적으로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의지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주심을 서로 나누며 교제하는 “영적인 동역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는 전도팀을 구성하는 멤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동행하는 여행의 동행자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영적 동역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영적인 힘과 격려를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처럼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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