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1∼7)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만난 어떤 제자들에게 질문을 한 후, 다시 세례를 베풀어주었습니다.
1. (복음)에 합당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곳의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세례에 대한 문제입니다. 세례 그 자체가 어떤 마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마치 혼인식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혼인한 사람으로 각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서 자신을,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각성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세례를 통해서야 비로소 성찬을 받을 수 있었고 공적인 예배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례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천명하신 지상명령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세례를 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세례는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함께 죽고 장사 되고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에서나, 믿는 자들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2. (세례교인)이 아닌 성령 충만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에서의 어떤 제자들은 성령님을 모른 채 예수를 믿고 세례받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성령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을 원하면서도 성령 충만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충만함에 대해서 생각할 때 성령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령 충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여러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 받는 것을 방언을 한다거나 황홀한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기대를 갖거나 아니면 반대로 거부감을 갖기도 합니다.
3. 성령 충만은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막무가내식의 뜨거운 열정과 신비체험으로 흔히 생각합니다. 또는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방언이나 치유 등 신비체험을 원하거나, 또는 특별한 능력과 축복을 원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성령님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 충만함은 성령님을 정말 우리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려면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이 각오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으로 기뻐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결혼하려는 사람이 갖는 마음과 같습니다. 결혼하자고 하면서 혼자 살 때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가정생활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성령 충만은 배우자가 아닌 주인이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 이전글[01.14]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24.01.13
- 다음글[12.31]브엘세바에 이르러 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