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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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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일자 |
  • 말씀본문 | 로마서 1:13-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과 “복음을 믿는다”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1. 복음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의 한국 사회는 남북한을 비교해서 보아도 영적으로는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불신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이유는, 불신자들 이전에 먼저 믿는 사람들인 크리스찬들조차도 복음을 따라 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크리스찬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성경말씀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부끄러워하기 이전에 주님께서 먼저 부끄러워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6)

2.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그러면 왜 먼저 믿는 크리스찬들이 복음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역설적으로 먼저 복음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복음은 사람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전해줘야 하는 복음은 사람들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전하게 합니다. 즉,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전달되어져야만 비로소 그 다음으로 전달해야 하는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이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세상은 복음을 조롱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며, 심지어는 복음을 미워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과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비난하고 기독교인들을 욕하기를 좋아합니다.

3. 복음을 (영화롭게) 합시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근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나 세상의 학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우주의 근원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고상한 것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고상한 철학이나 그 어떤 최상의 학문이라도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가 나타나서 다양한 종류의 철학과 과학을 제시했지만, 인생과 우주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을 생명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어린 아이이든지, 무식한 사람이든지, 심지어는 사형수이든지 간에, “그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어떤 희생도 크다 할 수 없으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믿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