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을 보라!
고대 역사를 보면 많은 나라에 투석처형제도가 있었는데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던져질 때 어떻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위협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지금 눈앞의 세상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앞의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눈에는 험악한 사람들의 모습도, 그들이 던지려는 돌멩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추악한 것들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만이 보였습니다. 그를 위협하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으니,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사나운 바람과 물결을 바라보는 순간, 물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예수님만 바라볼 때 비로소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2. 우리를 (응원)하시며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바라볼 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계시는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본질상으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보이는데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서계셨을까요? 고난당하고 박해를 받는 스데반을 격려하시며 응원하시기 위해 서계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비참한 실패자처럼 돌에 맞아 선혈이 낭자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스데반 집사였지만 예수님은 앉아계시지 못하고 서계셔서 스데반을 영접하시고 환영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자를 영접하시고 환영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서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서 주님의 영접과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3.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데반집사는 어려움과 두려움의 순간에 주변을 보지 않고 어떻게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끊임없이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주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주님 바라보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삶에 대한 좌절과 갈망이 생기게 됩니다. “정말 이제부터는 주님을 의식하고 살아야지”하고 다짐해도, 계속해서 경험되는 것은 “주님을 계속 잊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훈련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1. 위협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지금 눈앞의 세상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앞의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눈에는 험악한 사람들의 모습도, 그들이 던지려는 돌멩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추악한 것들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만이 보였습니다. 그를 위협하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으니,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사나운 바람과 물결을 바라보는 순간, 물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예수님만 바라볼 때 비로소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2. 우리를 (응원)하시며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바라볼 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계시는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본질상으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보이는데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서계셨을까요? 고난당하고 박해를 받는 스데반을 격려하시며 응원하시기 위해 서계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비참한 실패자처럼 돌에 맞아 선혈이 낭자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스데반 집사였지만 예수님은 앉아계시지 못하고 서계셔서 스데반을 영접하시고 환영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자를 영접하시고 환영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서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서 주님의 영접과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3.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데반집사는 어려움과 두려움의 순간에 주변을 보지 않고 어떻게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끊임없이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주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주님 바라보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삶에 대한 좌절과 갈망이 생기게 됩니다. “정말 이제부터는 주님을 의식하고 살아야지”하고 다짐해도, 계속해서 경험되는 것은 “주님을 계속 잊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훈련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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