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을 키웁시다
-구역예배공부-
내게 유용한 하나님? (사사기 17:1-18:20)
1. '이제 여호와께서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사사기 17장의 시작은 에브라임 사람, 미가에 관한 소개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사사시대에는 각 사람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소견에 따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판단대로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미가의 모친은 여호와께서 아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에 은으로 제작한 한 신상을 만들게 됩니다.(2-4절) 이것도 모자라, 미가는 제사장이나 입을 수 있는 제사 예복인 ‘에봇’을 만들며, 당시 각 가정의 수호신이라 알려진 ‘드라빔’이라는 우상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자, 미가는 집안의 아들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우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집안은 이교도의 우상과 은으로 만든신상과 그리고 에봇이 함께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후 미가는 마침 여행을 하던 유다지파의 레위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미가는 그에게 은 열과 의복 한 벌로 자기 집안의 제사장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그 청년은 그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며 미가 집안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3절)
미가와 그의 집안, 그리고 그 모친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들 집안에 복 주는 여호와는 다른 이교도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드라빔과 함께 집안의 번성을 위해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복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서 복으로(세상에서의 삶을 만족 시킬 물질적인 복, 건강한 복, 자녀들의 성공과 번성의 복 등등) 채워 주실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 만물로부터 영광 받으실 존재이신데,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저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많은 신 중에 하나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내게 유용한 하나님?
성경의 기록과 그 증언은 분명히 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물질적인, 번성적인 복의 모습도 당연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는 순종하여 받는 복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믿음으로 받고, 또한 그 말씀의 능력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절대적인 그분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그 분 앞에 비춰진 내 속의 죄의 모습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내 안에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창조주 되시며, 만유의 주인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의 본성을 지닌 우리를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케 하시며, 그 분의 부활과 영광의 날에 참여케 하심을 무한 영광으로 알고 무릎 꿇고 감사의 찬송을 올려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고 잘 되었더라, 헌금 많이 하면 복 준다더라, 너가 잘 되고 네 후손이 잘 되려면 교회 가서 예수께 빌어라. 교회서 이만큼 했으니까 다른 걸로 채워 주시겠지?’ 조금 심한 표현 같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생각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복을 주시건 안 주시건, 하나님께서 이 죄투성이인 나를 불러주시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받을 복은 다 받은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로 유발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용한 하나님 혹은 내게 아주 유익한 하나님’으로 전락시키지 마십시오. 내 속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게 유용한 하나님? (사사기 17:1-18:20)
1. '이제 여호와께서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사사기 17장의 시작은 에브라임 사람, 미가에 관한 소개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사사시대에는 각 사람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소견에 따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판단대로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미가의 모친은 여호와께서 아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에 은으로 제작한 한 신상을 만들게 됩니다.(2-4절) 이것도 모자라, 미가는 제사장이나 입을 수 있는 제사 예복인 ‘에봇’을 만들며, 당시 각 가정의 수호신이라 알려진 ‘드라빔’이라는 우상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자, 미가는 집안의 아들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우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집안은 이교도의 우상과 은으로 만든신상과 그리고 에봇이 함께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후 미가는 마침 여행을 하던 유다지파의 레위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미가는 그에게 은 열과 의복 한 벌로 자기 집안의 제사장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그 청년은 그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며 미가 집안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3절)
미가와 그의 집안, 그리고 그 모친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들 집안에 복 주는 여호와는 다른 이교도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드라빔과 함께 집안의 번성을 위해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복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서 복으로(세상에서의 삶을 만족 시킬 물질적인 복, 건강한 복, 자녀들의 성공과 번성의 복 등등) 채워 주실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 만물로부터 영광 받으실 존재이신데,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저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많은 신 중에 하나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내게 유용한 하나님?
성경의 기록과 그 증언은 분명히 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물질적인, 번성적인 복의 모습도 당연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는 순종하여 받는 복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믿음으로 받고, 또한 그 말씀의 능력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절대적인 그분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그 분 앞에 비춰진 내 속의 죄의 모습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내 안에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창조주 되시며, 만유의 주인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의 본성을 지닌 우리를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케 하시며, 그 분의 부활과 영광의 날에 참여케 하심을 무한 영광으로 알고 무릎 꿇고 감사의 찬송을 올려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고 잘 되었더라, 헌금 많이 하면 복 준다더라, 너가 잘 되고 네 후손이 잘 되려면 교회 가서 예수께 빌어라. 교회서 이만큼 했으니까 다른 걸로 채워 주시겠지?’ 조금 심한 표현 같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생각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복을 주시건 안 주시건, 하나님께서 이 죄투성이인 나를 불러주시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받을 복은 다 받은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로 유발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용한 하나님 혹은 내게 아주 유익한 하나님’으로 전락시키지 마십시오. 내 속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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