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환난 속의 큰 기쁨
오늘 본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즉 ‘큰 박해’와 동시에 ‘큰 기쁨’이 모두 강조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극복)합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핍박이 너무 심하여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기가 어려워지니까 그들이 뿔뿔히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는데, 그들이 흩어지면서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아시아로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로 살게 되면 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됩니다. 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과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살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기나 어려운 일이 생기나 마음이 크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환경보다는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2.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십니다.
분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떠났던 빌립을 소개하면서 ‘피난 갔다“고 하지 않고 ”두루 다니며 전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빌립은 분명히 사마리아에 전도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송을 받아 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도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 큰 박해 사건을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는가?” 싶지만, 그 일속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의 순교도 그리고 예루살렘의 큰 박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그랬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속에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3. (성령 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큰 박해 중에 이런 큰 기쁨이 일어난 것은 빌립이 성령 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난을 당하여 잠시 당황하였지만 곧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마리아에 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갈급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피난길이 전도 여행이 된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지만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전도해라! 전도해야지!”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면 삶 자체가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살면 우리가 직장 나가는 것이 전도고, 학교 다니는 것이 전도이고, 출장 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큰 환난이 오히려 큰 기쁨이 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1. 믿음의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극복)합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핍박이 너무 심하여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기가 어려워지니까 그들이 뿔뿔히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는데, 그들이 흩어지면서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아시아로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로 살게 되면 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됩니다. 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과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살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기나 어려운 일이 생기나 마음이 크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환경보다는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2.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십니다.
분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떠났던 빌립을 소개하면서 ‘피난 갔다“고 하지 않고 ”두루 다니며 전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빌립은 분명히 사마리아에 전도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송을 받아 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도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 큰 박해 사건을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는가?” 싶지만, 그 일속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의 순교도 그리고 예루살렘의 큰 박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그랬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속에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3. (성령 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큰 박해 중에 이런 큰 기쁨이 일어난 것은 빌립이 성령 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난을 당하여 잠시 당황하였지만 곧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마리아에 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갈급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피난길이 전도 여행이 된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지만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전도해라! 전도해야지!”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면 삶 자체가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살면 우리가 직장 나가는 것이 전도고, 학교 다니는 것이 전도이고, 출장 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큰 환난이 오히려 큰 기쁨이 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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