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러분은 교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신앙이 성장해 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고 계십니까? 아니면 갈수록 더 율법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1. 진정한 신앙은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다음과 같은 기독교 구원관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전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니면 무엇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들은 모두 한결같이 “우리의 행위는 없어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없는 우리의 모습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에 사용해 온 교리들입니다.
2. 진정한 믿음은 인격적인 (만남)과 성숙한 (삶)입니다.
사실 교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려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리는 예수님의 사진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 그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애수님을 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더 정확히 그린 그림을 찾아 그 그림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 그림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시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에 대한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내 삶에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내주하시며 우리를 만나시고 계속되는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주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어드리는 만큼만 주도하십니다.
3 (두려움)과 (떨림)은 진실된 신앙의 핵심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은 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합니까? 그것이 두려움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13절). 우리가 하나님을 직면하여 살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떨림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우리의 인격에는 반드시 변화가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에 이 두렵고 떨림이 사라지면서 온갖 부패와 방종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두렵고 떨림은 참된 신앙의 핵심요소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더 이상 진정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성화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환해야 합니다.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인생을 앞에 두고 진지함으로 임해야 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1. 진정한 신앙은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다음과 같은 기독교 구원관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전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니면 무엇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들은 모두 한결같이 “우리의 행위는 없어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없는 우리의 모습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에 사용해 온 교리들입니다.
2. 진정한 믿음은 인격적인 (만남)과 성숙한 (삶)입니다.
사실 교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려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리는 예수님의 사진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 그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애수님을 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더 정확히 그린 그림을 찾아 그 그림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 그림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시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에 대한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내 삶에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내주하시며 우리를 만나시고 계속되는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주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어드리는 만큼만 주도하십니다.
3 (두려움)과 (떨림)은 진실된 신앙의 핵심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은 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합니까? 그것이 두려움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13절). 우리가 하나님을 직면하여 살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떨림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우리의 인격에는 반드시 변화가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에 이 두렵고 떨림이 사라지면서 온갖 부패와 방종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두렵고 떨림은 참된 신앙의 핵심요소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더 이상 진정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성화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환해야 합니다.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인생을 앞에 두고 진지함으로 임해야 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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