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혜
진정한 지혜 (고린도전서 2:1∼12)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적 가치로 볼 때 잘나지 못한 사람들을 택하여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1. ( 아는것 )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 지혜 )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고린도에서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식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데 그것이 지혜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는 일이 있다면 다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잘 해보자는 것입니다. 바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알기는 많이 아는데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 지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하나님의 일꾼을 뽑을 때 꼭 지혜를 보신 것입니다.
2. 진정한 지혜는 ( 세상 )의 지혜가 아니라 ( 하나님 )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것입니다. 통치자들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는 결국 유효기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가령 바울이 살던 당시에 헬라철학과 로마의 정치와 문명은 이런 세상의 지혜를 대표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세상의 지혜로 들여다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를 신앙의 덕으로 섬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원리, 예컨대 기업 마인드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합리성만 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지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즉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어떤 영에 반응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3. 믿음의 (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 주인 )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12절)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도 모릅니다. 성령님만이 아십니다. 그걸 전제하고 하나의 기준을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믿을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지혜와 앎의 근본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세계로 인도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적 가치로 볼 때 잘나지 못한 사람들을 택하여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1. ( 아는것 )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 지혜 )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고린도에서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식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데 그것이 지혜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는 일이 있다면 다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잘 해보자는 것입니다. 바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알기는 많이 아는데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 지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하나님의 일꾼을 뽑을 때 꼭 지혜를 보신 것입니다.
2. 진정한 지혜는 ( 세상 )의 지혜가 아니라 ( 하나님 )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것입니다. 통치자들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는 결국 유효기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가령 바울이 살던 당시에 헬라철학과 로마의 정치와 문명은 이런 세상의 지혜를 대표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세상의 지혜로 들여다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를 신앙의 덕으로 섬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원리, 예컨대 기업 마인드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합리성만 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지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즉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어떤 영에 반응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3. 믿음의 (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 주인 )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12절)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도 모릅니다. 성령님만이 아십니다. 그걸 전제하고 하나의 기준을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믿을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지혜와 앎의 근본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세계로 인도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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