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소리 지르기 전에
돌들이 소리 지르기 전에 (누가복음 19:29∼40)
교회력에서는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무리들이 이렇게 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38절). 한 마디로 저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의 입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받게 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내 마음 속에 모셔야 하고, 내 삶에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금 이 시간 다시금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진정 나의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겸손)한 왕이 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을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왕의 입성이라고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아이들 병정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를 통치하는 방법과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는 높은 위치에서 군림하고, 힘으로 통제하며 다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낮아져서 섬기며, 사랑으로 보듬으며 다스립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법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귀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을 묵상하면서 받게 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주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왕이 십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마치 다윗과 같은 왕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생각 뿐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께서 조만간에 다윗보다 뛰어난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만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죽으러 가는 입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으러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받게 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죽고자 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되고자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살고, 그래야 교회가 살고,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왕으로 다시금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력에서는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무리들이 이렇게 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38절). 한 마디로 저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의 입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받게 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내 마음 속에 모셔야 하고, 내 삶에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금 이 시간 다시금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진정 나의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겸손)한 왕이 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을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왕의 입성이라고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아이들 병정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를 통치하는 방법과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는 높은 위치에서 군림하고, 힘으로 통제하며 다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낮아져서 섬기며, 사랑으로 보듬으며 다스립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법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귀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을 묵상하면서 받게 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주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왕이 십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마치 다윗과 같은 왕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생각 뿐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께서 조만간에 다윗보다 뛰어난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만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죽으러 가는 입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으러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받게 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죽고자 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되고자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살고, 그래야 교회가 살고,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왕으로 다시금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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