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해낼 수 없다면
만일 당해낼 수 없다면 (누가복음 14:25∼35)
앞에 나오는 말씀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은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1.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환대의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우 부담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문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턱대고 나를 따르지 말아라. 나를 따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를 따르기 전에 필요한 비용이 준비되었는지 따져 보라!” 그것은 주님을 올바로 따르는 데는 매우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람, 주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의 사람이 되는 비용이 보통 비싼 게 아닙니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할 각오,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모든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본문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합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완벽하게 비용이 준비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 가족과 내 소유에 미련이 많습니다. 우리 어깨는 십자가를 지기에는 너무도 연약합니다.
3. 주님은 (비용)이 아니라 (결단)과 (의지)를 바라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정말 주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비용이 부족한 사람은 가라! 너희처럼 비용도 못 낼 사람은 필요 없다!”라고 하시면서 쫓아내시는 것일까요? 주님이 그렇게 매정한 분입니까? 바로 여기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매정한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비용이 모자라 울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건지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비용을 완전히 낼 수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비용이 모자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주님의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비용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결단과 의지를 기대하십니다.
앞에 나오는 말씀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은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1.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환대의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우 부담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문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턱대고 나를 따르지 말아라. 나를 따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를 따르기 전에 필요한 비용이 준비되었는지 따져 보라!” 그것은 주님을 올바로 따르는 데는 매우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람, 주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의 사람이 되는 비용이 보통 비싼 게 아닙니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할 각오,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모든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본문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합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완벽하게 비용이 준비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 가족과 내 소유에 미련이 많습니다. 우리 어깨는 십자가를 지기에는 너무도 연약합니다.
3. 주님은 (비용)이 아니라 (결단)과 (의지)를 바라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정말 주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비용이 부족한 사람은 가라! 너희처럼 비용도 못 낼 사람은 필요 없다!”라고 하시면서 쫓아내시는 것일까요? 주님이 그렇게 매정한 분입니까? 바로 여기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매정한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비용이 모자라 울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건지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비용을 완전히 낼 수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비용이 모자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주님의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비용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결단과 의지를 기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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