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물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
좋은 선물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 (누가복음 11:9∼3)
우리는 성령강림절 때마다 성령님을 구하고는 곧 또 다시 잠잠해 집니다. 마치 어버이 날에만 효도하는 모양을 갖추는 불효하는 자식들과도 같습니다.
1.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본문은 성령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11장 앞부분까지는 성령에 대한 일체 언급을 않으시다가 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제목이 많겠지만, 제일 먼저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또 성령은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성령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고,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은 모든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이토록 주님께서 제자들에, 그리고 오늘의 모든 성도들에게까지 성령 충만을 강조하시는 까닭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모든 사역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서 어떤 보조 수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를 “곁에서 돕는 자”, “도우시는 분”으로 해석함으로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면, 성령님은 도와주시는 분 정도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이끄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주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령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복음의 역사의 주체이시고, 선교의 주체이시며, 모든 사역의 주체가 되십니다.
3. 성령충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충만이라고 하면, 방언과 치유, 기적 등 어떤 은사와 관계된 것만을 생각합니다. ‘충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플레로마’는 ‘흘러넘침’을 뜻하는 것으로 ‘속의 내용물이 넘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볼 때 “성령충만이란 다름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겉으로 드러낸 증거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겉으로 그 증거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완전히 내어맡겨 드리며,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성령님을 좇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성령을 좇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강림절 때마다 성령님을 구하고는 곧 또 다시 잠잠해 집니다. 마치 어버이 날에만 효도하는 모양을 갖추는 불효하는 자식들과도 같습니다.
1.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본문은 성령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11장 앞부분까지는 성령에 대한 일체 언급을 않으시다가 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제목이 많겠지만, 제일 먼저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또 성령은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성령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고,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은 모든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이토록 주님께서 제자들에, 그리고 오늘의 모든 성도들에게까지 성령 충만을 강조하시는 까닭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모든 사역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서 어떤 보조 수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를 “곁에서 돕는 자”, “도우시는 분”으로 해석함으로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면, 성령님은 도와주시는 분 정도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이끄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주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령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복음의 역사의 주체이시고, 선교의 주체이시며, 모든 사역의 주체가 되십니다.
3. 성령충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충만이라고 하면, 방언과 치유, 기적 등 어떤 은사와 관계된 것만을 생각합니다. ‘충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플레로마’는 ‘흘러넘침’을 뜻하는 것으로 ‘속의 내용물이 넘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볼 때 “성령충만이란 다름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겉으로 드러낸 증거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겉으로 그 증거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완전히 내어맡겨 드리며,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성령님을 좇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성령을 좇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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