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양처럼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양처럼 (마태복음 21:12∼17)
예루살렘 성전에는 훌륭한 찬양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든지 찬양을 잘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1.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잘 할 수 없지만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찬양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문적으로 노래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들은 정식으로 임명된 찬양대원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잘 할 줄 모르지만,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할 줄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 잘 할 줄 몰라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십니다.
사실 성전 뜰에서 찬양한 아이들의 노래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의 노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찬양을 “온전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6절). 우리 하나님은 부족해도 완전케 하셔서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위대한 이적의 핵심적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떡과 생선을 드렸습니다. 식어버린 보리떡과 말라버린 생선은 볼품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는 볼품 없었지만, 모자란 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셨습니다. 그 날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주님) 앞에서 항상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전에서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어떤 어른들에게 “성전 뜰에 가서 찬양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은 아마 이런 저런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다’는 뜻도 되지만, ‘늙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은 이 점에서 어른과 다릅니다. 어린이들은 천진합니다. 아직 체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아직 고집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성인인 우리가 어린이처럼 되는 것을 주님께서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이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른인 우리가 다시 어린 아이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훌륭한 찬양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든지 찬양을 잘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1.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잘 할 수 없지만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찬양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문적으로 노래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들은 정식으로 임명된 찬양대원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잘 할 줄 모르지만,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할 줄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 잘 할 줄 몰라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십니다.
사실 성전 뜰에서 찬양한 아이들의 노래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의 노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찬양을 “온전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6절). 우리 하나님은 부족해도 완전케 하셔서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위대한 이적의 핵심적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떡과 생선을 드렸습니다. 식어버린 보리떡과 말라버린 생선은 볼품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는 볼품 없었지만, 모자란 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셨습니다. 그 날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주님) 앞에서 항상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전에서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어떤 어른들에게 “성전 뜰에 가서 찬양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은 아마 이런 저런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다’는 뜻도 되지만, ‘늙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은 이 점에서 어른과 다릅니다. 어린이들은 천진합니다. 아직 체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아직 고집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성인인 우리가 어린이처럼 되는 것을 주님께서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이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른인 우리가 다시 어린 아이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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