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일어나라!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일어나라!(열왕기상 19:1∼8)
오늘 본문은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고 승리하였던 바로 그 엘리야가 탈진하여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의 사건입니다.
1. (육체)의 피곤과 (탈진)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엘리야는 매우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승리하기 어려운 싸움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 우상숭배자들을 사형하는 일들, 3년 6개월간이나 내리지 않던 비를 기도를 해서 내리게 한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또 비가 오기 시작하자 마차를 타고 앞서 출발한 아합 왕 보다 이스르엘까지 25km를 달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단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우상숭배자인 자신의 선지자를 죽인 일로 인해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자, 엘리야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남쪽 유다지역 최남단인 브엘세바까지 150km를 도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갈 힘이 없어서 머문 곳이 바로 로뎀나무 아래였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아무리 영적으로 엄청난 일을 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고 해도 과로하면 지칩니다. 영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육체의 피로와 탈진은 정신에 영향을 미쳐서 아무런 일도 못하게 합니다.
2.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엘리야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놀라운 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할 것을 기대합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지켜본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변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기에 위대한 일을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최선을 다했던 일이 실패하고, 변화를 기대했는데 변하지 않을 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탈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점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해서 엘리야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대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부르신 목적은 “그가 얼마나 충성하느냐?”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명하시는 일을 엘리야가 충성된 마음으로 변함없이 성실하게 감당하는지를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3. (상황) 중심적인 (판단)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3절에 “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보기엔 자기가 기대했던 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는 세력이 더 기세등등한 것을 보고 그는 도망하기 시작합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왕이 바뀌든지 이세벨이 죽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세벨과 아합은 도무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합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를 그 자신의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무엇을 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시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사실 지금까지 엘리야는 현실적인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왔던 그런 사역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모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자기에게 닥친 현실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의 연약함만을 묵상하게 됩니다. 주위의 환경과 문제들만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절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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