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끝나게 하는 열쇠
시험을 끝나게 하는 열쇠 (창세기 44:27∼34)
이번에 수해를 당한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자연 재해는 같은데, 재해를 견디는 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1. (시험)을 탓하기 전에 어떤 시험도 이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형들은 시험을 잘 이겼습니다. 그것은 유다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자, 요셉의 형들에게는 대단한 위기였는데, 유다가 나선 것입니다. 유다는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훔치지 않았는데 왜 이것이 여기에 있느냐?”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동생 베냐민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탓하거나, 베냐민을 몰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동생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시험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이처럼 모든 시험은 끝나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험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유다가 “베냐민은 살려주고 나를 대신 종으로 삼든지 죽이든지 하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에 모든 시험이 끝났습니다.
2. (자아)가 (죽으면) 더 이상 시험될 것이 없습니다.
유다의 처음 모습을 보면 “그의 신앙과 삶이 그렇게 아름답다, 훌륭하다, 믿음이 좋다, 괜찮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신앙의 인물이 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얼마만큼 성숙했는가 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동생 베냐민, 그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대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던 그 사람, 평소에 나에게 해로운 그 사람을 살리려고 내가 죽을 수 있는 이런 믿음, 이런 사랑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모든 시험은 거기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 하나 깨달으려고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신앙의 연한이 길다고, 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더 자아 중심으로 완고해 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자아가 죽으면 끝난다!” 더 이상 시험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살면 모든 (시험)은 다 끝납니다.
시험을 한번 이기고 나면 그 시험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겼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는 시험이 두 번 다시 없었습니다. 요셉 역시 정욕의 시험을 이겼을 때 두 번 다시 이 시험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시험은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 주어집니다. 물질의 시험에 실패하면 물질의 시험이 다시 옵니다. 이길 때까지 계속 다가오는 것입니다. 정욕의 시험에 실패하면 어디를 가든지 그 시험이 따라 다닙니다. 여러분, 명예의 시험이 왔을 때 이겨야 합니다. 거기서 무너지면 평생 명예 문제로 인한 시험이 계속 옵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붙잡으면 이깁니다. 유다가 “나를 대신 종으로 삼고 은잔이 나온 베냐민은 살려주시오!” 그랬는데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한 말씀을 그대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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