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자는 자들에 관하여
자는 자들에 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13~18)
오늘 본문은 성도의 죽음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1.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은 소멸된다”라고 말하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개인이 느끼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현실적 행복에만 매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죽음은 이 땅에서의 삶이 종료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의 끝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사회, 문화 배경 속에서 그 어떤 죽음 이후의 삶을 인지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죽은 자에 대해서 그냥 ‘죽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자는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잔다는 말은 ‘그 속에 여전히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겪고 있던 고통은, ‘재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이 죽는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는 그들을 다시 못 만난다는 데에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재림공동체로서 여기에 자신들의 모든 걸 걸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18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여기서 ‘이러한 말’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입니다. 세상이 관심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이 돈, 출세, 스펙, 자식, 사업, 또는 어떤 이들의 스캔들, 이런 것에 재미를 붙이면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에 대한 과도한 열정에 파묻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스타일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의 살과 피를 남에게 줄 수는 없어도, 자기의 것,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위임하신 것의 일부를 남에게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실천 사항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나눔의 실천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는데, 물질을 나누는 것, 시간을 쪼개어 나누는 것, 내가 지닌 기술과 재능을 나누는 것, 봉사와 취미 생활을 나누는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나의 신체 일부분을 이웃과 나누는 장기기증 역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나눔의 실천입니다. 오늘 사랑의 생명 나눔에 동참하는 결단을 통해 신목교회 성도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성숙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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