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콩깍지가 씌워져야 합니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워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9:26∼31)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은 것은, 사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사도 바울은 교회의 핍박자 사울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1. 나는 (죽고) 십자가의 주님으로 사는 사람이 (성령)으로 난 사람입니다.
핍박자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후 바로 전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한때 무서운 핍박자였던 사울인지라 누구도 사울이 회심하였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럴 때마다 사울을 믿어준 사람이 바나바였고, 바로 이런 바나바의 사랑 때문에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사도 바울은 교회의 핍박자 사울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나바가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바나바에게 사울을 섬기고 사랑하도록 역사하지 않았다면, 그런 눈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나바는 단순히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철저히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울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고 결국 사울을 사도 바울이 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십자가)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아무리 귀한 십자가 복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복음 안에 서있지 못하면, 이것도 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삼게 됩니다. 사울은 문제 덩어리였고 그 성품이 온전히 다스려지지 않은 초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포악한 핍박자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문제점으로 본다면 사울은 문제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 사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바나바라고 안 그랬겠습니까? 하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볼 때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를 보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오직 하나 사울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것 그것 하나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덮어버렸습니다. 바나바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나바는 사람을 볼 때 오직 하나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오직 그 사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충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기에 그를 믿어주었고 오직 사랑만 쏟아 부어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3. (사랑)을 심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떤 사람도 용납할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존심 싸움을 하고 상황이 어렵다고 낙심하고 이단에 쉽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가 잘 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련하고 부족하고 불쌍하고 한심하고 바보같고 멍청해서 하나님은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겠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힘들어도 답답해도, 두려워도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만 바라보십시오. “주님, 받아들일게요. 감사해요” 할 때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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