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창고를 열라!
축복의 창고를 열라!(창세기 41:46∼57)
지난 주일에는 “신앙생활의 중심축은 예배로서 이것이 흔들리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1. 축복의 창고는 (예배)의 자리로부터 (시작)됩니다.
벧엘의 제단을 쌓았던 야곱은 바로 이 예배의 자리가 하늘의 문이요, 축복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안락한 환경, 좋은 환경이 아닐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바로 그 자리가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자리인 줄 믿습니다. 이후 야곱은 날마다 바로 이 벧엘의 자리를 사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축복의 문을 여는 에너지는 예배의 자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모든 축복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로얄 제리를 잘 먹은 애벌레가 여왕벌이 되듯이, 매 시간 예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여튼 우리 교회 예배가 이번 기회에 변화가 되고 갱신이 되어서 예배가 내 삶에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축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는 분명한 (신앙고백)입니다.
본문의 구조는 46∼49절까지는 7년 대풍년의 이야기이고, 53∼57절까지는 그 이후에 일어난 흉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즉 풍년과 흉년에 관한 이야기 중간에, 뜬금없이 요셉이 아들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이 이야기를 빼고 읽으야 이야기의 흐름이 더 매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명 스토리가 삽입된 것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큰 아들의 이름 ‘므낫세’는 히브리어로 ‘잊어버림’이라는 뜻이고, 둘째 ‘에브라임’의 뜻은 “두 배로 배상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이 큰 아들 이름을 통해서 “내가 과거의 어두운 세월에 연연하지 않겠다, 내가 맨날 상처 때문에 족쇄에 발목이 묶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을 고백했다면,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통해서는 “과거에 상처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내 모든 지난 세월의 아픔과 상함과 찢겨짐이 오히려 내 미래를 두 배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3. (신앙고백)이 (섬김)의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열매는 이웃을 섬기는 것으로 그 에너지가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요셉의 눈물이, 요셉의 가슴의 상처가 찢어지는 그 아픔과 상처가 주변 사람들에게 윤택하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즉 섬김의 에너지라야 비로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고백의 에너지를 섬김의 에너지로 전환하여 축복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고백으로 축복의 원리를 깨달아 그 열쇠로 축복의 문을 푼다고 해도,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의 에너지로 섬길 때에라야 비로소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7년 흉년 속에서도 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기근을 이기게 하는 요셉의 창고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의 에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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