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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통곡인가? 함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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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본문 | 에스라 3:10~13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당시의 상황입니다. 그럴 때 통곡과 함성이 함께 들렸습니다.

1. 감사와 찬양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입니다.

본문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폐허입니다. 성전 재건에는 뜻을 모았지만 기초석만 달랑 놓은 서글픈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을 망하게 놔둔 너무나 무기력한 하나님, 자기 민족을 방치해 놓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11절)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고백 속에 그들이 비참함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 너머에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현실을 뛰어넘는 결단의 문제입니다.

2. 지금 철저한 (회개)가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12절과 13절에서는 함성소리와 통곡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먼저 들린 소리가 통곡 소리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족장들이 통곡한 이유는 먼저는 회복과 감격에 대한 기쁨, 그리고 웅장했던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면서 밀려온 회한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무너진 솔로몬 성전을 생각하며 회한과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데교회를 향해 “죽었다”고 선포하십니다. 사실 사데교회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회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살았으나 죽었습니다. 이름은 살았는데, 세계적으로 명성은 자자한데, 죽었다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3. 회개의 (통곡)과 기쁨의 (함성)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통곡소리에 이어 들리는 것은 함성소리입니다. 한편에서는 대성 통곡, 한편에서는 기쁨의 함성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절망의 통곡소리를 낼 때, 젊은 세대로부터 기쁨의 함성소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대들은 죄책감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목표는 한번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바로 이 방법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통곡과 회개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수치와 조롱 때문에 좌절하는 현실이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동시에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럴 때 회복과 치유와 미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의 함성이 흘러 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