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신령한 것에 대하여
신령한 것에 대하여(고린도전서 12:1∼11)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음에도 서로 반목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편지했습니다.
1.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신령하다고 할 때는 그 사람으로부터 풍겨오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오늘 신령한 것으로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신령한 사람은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은 사실 모두 이방인이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들이 우상이 이끄는 그대로 끌려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상으로 끌려가는 자들을 성령으로 이끄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상에 끌려다니는 그들을 부르시기 위해서 나타난 역사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도 우상에게 끌려가는 존재를 하나님께서 끌어오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 강력한 힘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2. 신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은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은사는 내게 주셨으니까 내가 사용하지만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은사의 이기적 사용이 차단됩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용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용권을 잘 못 사용하면 그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은사는 축복이며 동시에 책임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신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자기 것인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가지고 차별했습니다. 은사를 가지고 사람의 높낮이를 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뉘고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개인의 우월성과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명을 실천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공동체를 성숙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왕성해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는 그런 은사가 없기에 그런 섬김을 할 수 없다고 핑계 대거나 외면합니다. 그러나 봉사와 사명의 자리에 부르심을 받는다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제부터라도 은사들을 간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그것은 곧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으로 교회를 돌보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사모해야 할 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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