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마태복음 28:16∼20)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우리들이 성령 받고 세상에 파송될 때에 가장 중요한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1. (삼위일체) (신앙고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본래부터 삼위일체는 ‘교리’로 정리된 개념이었습니다. ‘교리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학적 논쟁을 통해 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리로서 삼위일체론이 정착된 것은 4세기로 325년에 있었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였습니다. 교회가 오랜 기간 여기에 집중하였던 이유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신론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대교나 이슬람이 믿는 일신론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 분 하나님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만 계급적이지 않고, 민주적이며, 독재하거나 폭력을 쓰거나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사랑으로 셋이 하나로 존재하는 독특한 존재 양태를 가지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2. (선교적)인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삼위일체가 등장하는 본문인 19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이 말씀은 소위 대위임령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인은 삼위일체인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복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목적은 교회 부흥만이 아닙니다. 그것의 궁극적 목적은 선교입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궁극적인 소명과 사명은 선교적인 삶의 실천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 주님과 (동행)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중병을 한마디로 “예수 결핍 장애”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와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나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이나 ‘건강’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그래서 새 사람을 입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점진적 과정입니다.
- 이전글[06.11] 아름다운 신목의 공동체 23.06.10
- 다음글[05.28]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