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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3.19]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3. 03. 19.
  • 말씀본문 | 요한복음 9:1~16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게 하신 사건과 그로 인한 논쟁을 소개합니다.


1. (불행)(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은 재앙이나 대형 사건 사고들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잘 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행 자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불행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이 드러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아픔을 우리 마음에 품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이 우리 (마음)에 비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입니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사실은 모두 빛이 굴절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되었다는 말은, “전적으로 빛이 내게로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맹인에게는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고 터치하심으로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맹인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고자 하는 예수님의 그 마음과 뜻을 그에게 비춰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기꺼이 구원의 빛을 볼 수 없던 우리에게도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빛이 어느새 우리를 어둠을 밝히는 또 다른 빛으로 물들여 가고 있습니다. 온 땅을 밝히는 빛이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3. 예수님의 빛은 (비유)가 아니라 (실재 實在)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요한복음에서 여러 번 자주 반복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비유’(metaphor)로 혹은 상징’(symbol)으로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비유로만 혹은 상징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제한적인 눈에 보이는 그런 세상의 빛과는 전혀 다른 차원과 종류의 빛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지어지기 전에,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는 명령으로 생겨난 그 빛은 무엇입니까? 그 빛은 온 우주를 뒤덮고 있던 어둠과 혼돈을 걷어내고,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었던 창조하는 능력인 태초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그 빛’, ‘태초의 빛’, ‘창조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