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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12.15]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4. 12. 15.
  • 말씀본문 | 누가복음 2:25~33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누가복음 2:25∼33)


  기다림은 기다리는 이에게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므온을 통하여 기다림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다림은 (믿음)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소망)이 됩니다.


  시므온은 경건했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참으로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가 이 땅 위에 살면서 기다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라는 점입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렇게 소망을 잃지 않는 우리의 기다리는 믿음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응답을 얹어놓는 받침대라는 것입니다. “믿었다”는 것은 “응답을 얹어놓을 받침대가 준비되었다”는 것이지, 믿음 그 자체로 말미암아 응답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응답이 올 수 있도록 받침대를 준비해 놓고 만반의 예비를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침대가 준비되었으면 이제 다시 응답을 얹어 주시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망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렇게 기다리고 소망하던 예수님이 자신만의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향한 소망과 구원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와 구원은 자신만을 위한 구원이 아닙니다. 이는 타인과 이방 타민족을 위한 구원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고난과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넘어짐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어섬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 복을 전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방의 빛 된 삶의 모습입니다. 시므온이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누군가에게 동일한 소망을 보았듯이, 소망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일어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즉 “나의 소망이신 그분이 누군가에게도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것 말입니다.


3. 온전한 기다림은 (성령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일종의 고통스러운 행위입니다. 뭔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것을 참아내야 하는 고통이며, 일을 막 저지르고 싶은데도 참아야 하는 것이고, 응답되지 않은 기도를 붙잡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작업이며,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진정 고난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에 대한 최선의 해법은 그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즉 “이 모든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라는 증언입니다.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가느냐?”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