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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9.18]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2. 09. 18.
  • 말씀본문 | 시편 79:1~9

  오늘 본문인 시편 79편의 표제는 아삽의 시,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당대의 최고의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1. 언제나 (낯선)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편을 대할 때 먼저 시()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친숙하고 익숙한 것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며 그냥 지나칩니다. 그런데 시()는 이 친숙함의 베일을 벗겨내는 것입니다. 시가 되는 순간 낯익었던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 줍니다. 150편의 시편을 살펴보면 내용상으로 볼 때 찬양과 탄식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경험하게 될 때 하는 것이라면, 탄식은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존하심과 부재하심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실상인 것입니다. 시편의 기도와 묵상은 인간이 경험하는 진실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억압하지 않고 드러낼 때 성찰적 거리가 확보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성령님)께서 간구하십니다.


  탄식시나 저주시의 경우처럼 우리가 속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토로할 때, 그것을 나와 함께 바라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즉 우리가 고통과 절망 중에 하나님의 부재하심을 느끼며 탄식하며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위로자가 되시는 지혜의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성찰하시며 대신 간구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가 성령의 음성과 감동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를 가져다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시편 79편 아삽의 시에서는 그러한 성령의 탄식과 그 탄식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소개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 시편 속에서 아삽은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 그의 심정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3. 지금 이 시대와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탄식)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고 성도가 다 죽임을 당하며 조롱당합니다. 이것은 요즘에 한국교회가 비방을 받고 조롱과 조소를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 post-truth 시대, 즉 탈진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탈진실 시대의 특색은 하나님 망각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작금 이 시대는 믿는 이들조차 하나님의 뜻은 제쳐놓고, 진영 논리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요?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지향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경외심을 품고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린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