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2]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오늘 본문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까닭은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이 세운 (좋은 계획)이라도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나름대로 좋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그 목적을 1차 전도여행에서 세워진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고, 여유가 있으면 소아시아 지역으로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막으셔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전도 거점으로 삼으려고 하였던 디아스포라 회당은커녕 전도 대상자조차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겨우 강가에 모여 있던 여자들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사람이 세운 좋은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대와 상반된 상황에 빠진 사도 바울에게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바울의 기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의 핵심 키(key)는 기도입니다.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것도 기도할 때였고, 강가에서 루디아와 여인들을 만난 것도 기도처를 찾을 때였고, 또 이후 빌립보 감옥 문이 열리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게 된 것도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점점 분명하게 알아갑니다.
3. 오늘 우리도 (기도)의 (용광로)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는 식어집니다. 그래서 기도는 마치 용광로와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뜨겁게 타오르는 아궁이에서 장작 하나를 꺼내 차가운 아궁이에 던져 넣으면 그렇게 잘 타던 장작이라도 불꽃이 힘을 잃고 사그라들고 맙니다. 똑같은 장작이라고 뜨거운 아궁이 속에서는 잘 타던 장작이 아주 냉냉한 아궁이 속에 넣으면 다 꺼져버립니다. 하나님 말씀은 똑같아도 성도들마다 역사가 달리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가 다른 것입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우냐, 기도의 용광로가 식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용광로와 같이 불이 붙는 교회가 되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중요한 사명입니다.
- 이전글[05.29]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22.05.28
- 다음글[05.15]내가 주의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2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