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2)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로마서 5:1∼5)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구원의 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1. 기독교의 ( 구원 )은 (교리 )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신칭의 중심의 성경 이해와 이신칭의 중심의 기독교 이해가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데에는 실용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신칭의 구원 공식을 통해 그냥 믿기만 하면 죄를 짓고서도 회개만 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신다고 하니 기독교가 점점 윤리가 타락하면서 몰상식한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신칭의를 통해 이미 구원받은 우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게 아닙니다. 이신칭의를 믿기만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교리를 믿기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2. 예수님 안에서 ( 하나님)과의 (화평 )을 누려야 합니다.
로마서 4장까지 이신칭의 교리를 설명한 바울은 5장에서는 그렇게 이신칭의의 신앙을 고백한다면 그다음에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그럴 때 여기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바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즉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서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고행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율법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주님과의 끊임없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화평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더 심오해져 가는 것입니다.
3. 성숙한 ( 공동체)를 이루어 (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다섯 구절밖에 안 되는 짧은 본문 속에서 ‘우리’라는 대명사가 무려 7번 나옵니다. 즉 이러한 대명사의 사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상실한 종교단체라고 한다면 올바른 기독교가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되는 일에 있어서 그 어떠한 차별이나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아울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환난의 과정을 거쳐서 인내심을 키우게 되고 인내하는 과정에서 나의 믿음이 연단되기 때문입니다. 연단된 믿음은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앞에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난의 때에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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