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예레미야 33:14∼16)
본문은 남유다 멸망이라는 암울한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시위대의 뜰에 갇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1. 하나님 (말씀)의 (성취)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남유다 멸망을 선포하던 것과 달리 “이제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실행될 것이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그 회복의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을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정의와 공의는 약속하신 언약의 선한 말을 성취함으로(14절) 이루어지며, 또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 나는 것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며(15절) 그렇게 되으로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16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 날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의 ‘그 날’을 말씀 가운데 생생하게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2. 하나님은 언약의 (성취)를 (십자가)에서 이루었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함으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을 성취할 분은 ‘다윗에게서 나온 한 공의로운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 가지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의 초기 기독교는 예레미야가 말하는 그 다윗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 막연했던 ‘그 날’에 일어날 사건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이루실 정의와 공의란 흔히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정의와 공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와 부정의 근원인 “죄를 처단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처단하고 이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해주시는 사건이 바로 예수 십자가인 것입니다.
3. 기도가 (은혜)의 (통로)입니다.
예레미야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희망을 노래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저는 예레미야의 반전 메시지의 키는 본문의 배경 말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우리가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건성으로 기도합니다. 진심이 없습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느끼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응답과 성취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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