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 동행 중에 있는 줄로
본문에서 마리아와 요셉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식과 형식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1. 예수님과의 (동행)이 믿음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내 곁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예수님이 정작 나와 함께 아니 계셨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아니 계시다는 사실조차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과의 동행이 우리 믿음의 핵심가치이며 본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엉뚱한 것들을 붙들고 산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와 본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도라고 불려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여정 가운데 예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치관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소원하는 기도 속에, 비전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2. 예수님께서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허둥대고 살아가는 인생들을 향한 비극적인 한 기록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으나 예수는 동행중에 아니 계시더라.”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있으려니 생각했고,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있으려니 생각을 했던 겁니다. 현대 교회의 교인 중에는 예수 없는 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큰 교회를 좋아하는 현대 교인들은 군중 속에 끼어서 함께 따라가다 보면 천국에 도착하려니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현대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쾌락을 구경하며 함께 즐기는 종교 도착증 환자들이라고 날카롭게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나의 문제가 있고, 우리 모두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3. 예수님과의 (동행)을 (교회)를 중심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결정적으로 잃어버린 것은 언제 어디서입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교회를 떠날 때입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예수님을 떠난 심령은 살 수가 없는 법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교회에 뿌리를 잘 내리는 성도가 마지막 날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 교회가 모순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이야기는 여기 모이는 성도들이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 이전글[01.02]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22.01.01
- 다음글[12.19]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