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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9.12]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9. 12.
  • 말씀본문 | 시편 19:1~14

  본문 속에서 다윗은 인간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대상이 있다고 노래하는데, 첫째는 자연 만물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1. 하나님의 (솜씨)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을 따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거듭해서 이 구절을 되니이다 보면, 일상의 자잘한 일들로부터 벗어나 우주에 가득 찬 신비 앞에 서게 됩니다. 다윗은 하늘과 땅과 별을 바라볼 때 그냥 보지 않고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영적인 감각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져서 이 놀라운 세계를 몰라봅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다윗처럼 아룸다운 자연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눈이 뜨여야 모든 것이 바로 이해되고 올바른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  2. (말씀)의 (풍요)를 누려야 합니다. 


  다윗은 율법을 통해 증거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합니다.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면에서 우리를 유익하게 합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그 말씀 속에 지금 나에게 들려주시는 교훈과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일고, 묵상하고,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기대와 사모함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이 나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기대와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같은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평가를 하게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3. 우리는 (주님) 앞에 (열납)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흐름은 하나님의 율법인 말씀에서 다시 다윗 자신의 내면세계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산다'는 것은 "결론이 명확한 존재로 산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앞에 서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구든 인생의 최종 결국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여기서 '열납'이라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자로는 '기쁠 열(悅)', '바칠 납(納)' 자를 써서 "기쁘게 바친다, 기쁘게 받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제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소든지 양이든지 어떤 짐승이든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흠없는 존재가 업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그 유일한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