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9]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
야보고서의 배경이 되던 시대에는 뜨거운 신앙이 식어가고 점점 머리로만 믿는 신앙으로 굳어갔습니다.
1. (머리) 신앙에서 (가슴) 신앙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신앙은 머리와 가슴이 함께 가야 합니다. 지성과 영성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영성은 메마르고 머리로만 신앙생활 하는 건조함이 팽배해졌던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믿는다"라고도 하고, 반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인들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되면 믿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은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 관심과 헌신이 요청되는 궁극적인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머리와 가슴이 어우러진 개념으로 본문에 나오는 지혜를 생각해봅니다.
2.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장로는 지혜를 참 지혜와 거짓 지혜,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즉 하나님께 속한 지혜와 사단에게 속한 지혜로 구분합니다. 야보고 장로가 말하는 지혜는 머리 좋고, 학교 공부 잘하는 그런 지혜가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즉,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행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케 하는 겁니다. 그렇게 지혜를 정의하고 나니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고 또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에 우리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성령님 소관으로, 하나님 주관이므로 우리의 지혜 없음이 핑계가 되겠다 싶습니다.
3. 위로부터 난 지혜의 (핵심)은 (온유함)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온유함이 참된 지혜요 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온유함으로 지혜의 선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온유함의 실천이 지혜를 드러내는 핵심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충고하지 마세요. 내가 정말 저 형제를 사랑한다고 한다면 한마디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속에 다투는 마음이나 시기심이 있다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사랑과 온유와 겸손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것보다 실제로는 더 똑똑한 겁니다. 온유함이 참된 지혜요 위로부터 난 지혜를 소유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롭다는 사실을 실행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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