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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7.11]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7. 11
  • 말씀본문 | 마가복음 6:14∼29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결혼 문제를 지적하자 그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세례 요한의 목을 베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1. (말씀)을 달게 듣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믿음)인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헤롯왕이 세례 요한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그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줄을 알았고 두려워했으며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의 말을 번민하면서도 달게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이 그의 양심을 찔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헤롯왕은 세례 요한의 말씀 선포를 듣고 괴로워하며 달게 들었지만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귀만 즐겁게 한 것뿐이지 말씀을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귀로만 듣고 실행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으실 때도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들어야 합니다. 눈을 감지 말고 말씀을 보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또 써야 합니다. 오감을 동원해서 듣고 나가서 몸을 써 행동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언제나 (믿음)의 초점을 (예수님)에게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영웅적인 죽음을 본받으라!’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죽어서도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정작 헤롯은 세례 요한만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세례 요한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바로 보지 못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순교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요즘 순교를 가장 많이 말하는 종교는 이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러한 순교를 요구하는 것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문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하다”고 고백하며, “언제나 겸손하고 명확하게 믿음의 초점과 삶의 중심을 예수님에게 두라!”고 하십니다.

 

3.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믿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 맥락 속에서 과연 누가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낸 것입니까? 헤롯왕입니까? 세례 요한입니까? 오늘 본문의 앞뒤 맥락에 따르면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모든 삶과 가치관의 초점을 예수님 앞에서 명확하며 실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럴 때 믿음의 초점을 예수님에게로 명확히 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중심적인 믿음을 버리고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뭘까요? 회개는 그냥 죄책감을 떨쳐버리려고 죄 용서를 구하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회개는 나를 위해 살며 나밖에 모르던 내가, 나의 죽음을 맞이하고, “이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내가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이제 예수를 위해 살겠다!” 이런 거룩한 결정! 유턴! 이게 회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