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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5.16.]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5. 16.
  • 말씀본문 | 요한일서 5:9~13

​  요한일서가 기록된 목적은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1. (믿음)이 있어도 (확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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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인데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 영원한 셩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 없어도 구원 받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확신이 없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시작(뿌리)이라면 확신은 절정(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믿는 것과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또 구원의 약속은 확신의 믿음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연약한 믿음에도 주어집니다. 가장 작은 믿음도 가장 큰 믿음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얻게 합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이 없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라는 구원파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  2. 믿음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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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성입니다. 구원은 믿음의 크기와 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진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이 심리적 속성 또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통 확신은 진실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때론 거짓으로 밝혀질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 반대로 의심과 불확신이 언제나 거짓인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엔 오히려 의심이 확실한 진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신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중 중요한 것은 신실함입니다. 신실함을 다른 말로 '믿음 안에서의 인내'인 것입니다. 이것은 확신의 강도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  3. (확신)의 증거는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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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오는가?" 하면 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을 들음과 함께 결정적으로 "성령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치시고 보증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다음에 듣는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확신을 이루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우리가 받아들일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인치심으로 도장을 찍어주십니다. 그것으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장을 마음에 찍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확신은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새장에 오래 갇힌 새는 문을 열어줘도 날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날개가 있다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날개는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어야 믿음의 날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