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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 25] 선한 목자는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4. 25
  • 말씀본문 | 요한복음 10:11∼18

오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 속에 담긴 뜻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한 목자의 (진실)은 (더러운) 목자입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의 이미지로 넓고 푸른 풀밭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 떼와 잔잔하게 흐르는 시내에서 물을 마시는 양 떼, 그리고 그 옆에 막대기를 들고 온화한 모습으로 양들을 바라보는 목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실 목자는 힘들고 거친 직업이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1세기 랍비 전승에 따르면 목자들은 부정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배척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지칭하신 것은 “얼마나 우리 편이 되고 싶어 하시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습, 고집스럽고 제멋대로고 냄새나는 우리를 품에 안으시기 위하여, 기꺼이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내려오셨다는 표현을 하기 위하여,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에 자신의 (존재 목적)을 둡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실 때 그 말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목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양이 목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양이 목자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에게 어떻게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마음대로 양을 막 대하는 목자는 ‘악한 목자’라고 규정하셨습니다. 반면에 양이 행복해지도록 일하고 희생할 줄 아는 목자를 ‘선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우리 인간을 착취하고 부리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가장 귀한 것까지 기꺼이 희생하는 분이십니다.  


3. 선한 목자를 따름으로 신앙의 (방향) 감각을 (회복)합시다.
언제나 맹수에게 희생되기 쉬운 양은 방향 감각이 둔합니다. 양은 방향 감각이 둔한 데다가 시력마저 떨어집니다. 그래서 양이 이동할 때는 자기의 감각에 따른 판단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른 양의 움직임을 따라 조건 반사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멸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이 땅에 사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꼭 그렇습니다. 하지만 양이 약한 시력과 어둔한 방향 감각으로는 잘못 판단하여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지만, 목자의 음성을 듣는 청각에 따르면 오직 목자가 인도하는 방향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양은 잘 먹고 잘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오직 목자만 따라갑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목자장이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