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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3.14]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3.14.
  • 말씀본문 | 요한복음 3:14~21

​  사람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잘 알지만 대부분, 이 말슴이 쓰인 문맥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1. 본문은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자 당시 유대교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회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후 거듭남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갑니다. 니고데모의 입장은 "거듭난다는 말에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입장은 "성령에 의하지 않으면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일종의 신학 논쟁입니다. 그러나 이 논쟁이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으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유대인은 보기는 보았지만 보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듣기는 들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2. 우리의 (구원)의 열쇠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다시 유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나가십니다. 그리고는 구원의 핵심 키로 놋뱀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놋뱀을 쳐다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났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인자', '나 예수'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구원을 받는 믿음이란 도대체 어떤 믿음이라는 말입니까? 놋뱀처럼 들려지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어떤 예수님보다도 십자가에 달리리시는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그렇게 쉬운 일 즉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일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을까요? 그렇게 쉬운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많은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  3. 우리의 (삶)이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가운데로 나가야 합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당시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두 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보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성도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인도받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무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직 맺어지지 않아서 빛이신 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